2019/07/19 - [시사] - 베네수엘라 근황 상황

홍준표의 부르짖음을 참조하면 좋겠다.

 

베네수엘라 근황 상황

홍준표가 늘 부르짖는 '대한민국이 베네수엘라와 같이 되고 있다' 는 말은 정치에 일절 관심이 없더라도 인터넷 커뮤니티, SNS, 뉴스 등을 통하여 한 번 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그리고 지나가는 정보로라도 베네..

lefty0206.tistory.com

 

 

통합진보당의 민영화 반대 시위 오마이뉴스
베네수엘라 상황 MBC 뉴스

 

 

현재 '베네수엘라의 위기'라 하면 석유 파동, 경제문제 등이 부각되기 십상인데,

사실 우고 차베스는 2008년에서 2010년까지 엄청나게 많은 사기업들을 국유화 한 사실이 있다.

국유화는 대한민국에서도 '그쪽'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인데...

 

 

 

우고 차베스
서울시의 근로 이사제 머니투데이

 

 

차베스는 지지자들로 구성된 노조를 경영에 참여하게 하는 이른바 '근로이사제'를 실시했고,

노조는 주주들을 매수하여 경영진들을 쫓아냈다. 그런 식으로 수많은 사기업들을 국유화 했다.

아래의 그림은 서울시에서도 추진하려 했던 근로자 이사제.

 

 

 

차베스 한겨레
연합뉴스

 

 

차베스가 국유화에 박차를 가한 이유는 포퓰리즘을 대폭 강화해야 했기 때문이다.

2009년에 차베스는 개헌을 시도한다. 야당은 물론이고 지금까지 그를 지지하는 것처럼 보였던 세력들도 반발했다.

차베스는 대통령 연임을 제한하는 조항을 없애는 개헌을 밀어붙였다.

인기를 회복하기 위해 그는 빈민들에게 존나게 퍼주어야 했던 것이다.

 

 

 

이 글에서는 차베스가 국유화한 사기업들 3가지만 예를 들어보겠다.

 

 

 

먼저 카길(Cargill).

 

 

 

Cargill

 

 

 

카길은 남미 사람들이 주식으로 먹는 밀가루나 옥수수 가루, 식용유 등을 생산하는 미국 곡물 가공기업이다.

차베스가 이 기업에 눈독을 들인 이유는 그야 물론 빈민들에게 선심을 쓰기 위해서였다. 이른바 포퓰리즘.

 

 

 

경향신문

 

 

당초 차베스는 카길에게 식품값을 내릴 것을 요구했다.

차베스는 시장은 몇몇 자본가들의 탐욕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기업들은 베네수엘라에서 장사를 하고 싶으면 가격을 낮춰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카길측에서는 이보다 가격을 더 내리면 적자를 보게 된다고 거부했다.

결국 차베스 정권은 2009년 3월, 카길을 국유화했다.

 

이때 차베스가 한 유명한 말이 "This revolution means business (이 혁명은 농담이 아니야)"였다.

 

 

 

통일뉴스

 

 

빈민들은 차베스의 정책에 열광했다.

사실 차베스가 그립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2010년 전후의 말도 안되게 퍼주는 포퓰리즘을 경험한 사람들이다.

결국 차베스는 암에 걸려 사망하였고, 베네수엘라인들은 그들의 어버이수령동지의 죽음을 슬퍼했다.

 

 

 

마두로

 

 

하지만 그들에게는 앞으로 진짜 슬퍼해야 할 일들이 남아있었다.

마두로가 취임하면서 카길의 생산량이 급감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크게 두가지였다.

 

 

 

 

 

우선 국영기업에 임명된 사람들은 대부분 낙하산으로 책임감도 없었고 전문지식도 없었을 뿐더러,

또다른 문제는 바로 암시장이었다.

 

 

 

중앙일보
국제뉴스

 

 

시장이 정한 가격을 국가의 힘으로 억누르자니 생산량은 줄어들고 물건을 원하는 사람들은 웃돈을 주어야 했다.

그리고 부패한 공기업의 관료들은 물건을 암시장에 빼돌리기 시작했다.

공무원 월급보다 암시장에서 벌어들이는 돈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베네수엘라의 식량난은 흉년 때문이라 할 수 없다.

곡물은 생산된다. 하지만 그 곡물을 가공하여 도시에 공급해야 하는 과정에 문제가 있다.

암시장에 식량은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서민들은 식량이 어디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리고 개돼지들은 차베스가 죽었을 때 흘린 눈물의 몇배 이상의 눈물을 흘렸다. 물론 지금도 흘리고 있다.

 

 

 

 

오웬스 일리노이

 

 

차베스가 국유화한 두번째 사기업도 역시나 미국 기업이다.

오웬스 일리노이라는 기업이다. 유리를 생산하는 기업이고 베네수엘라에서 가장 많은 유리를 생산하는 기업이었다.

 

 

 

카라카스

 

 

2010년, 차베스 정권은 오웬스 일리노이도 국유화했다.

유리를 낮은 가격에 사들여서 수도 카라카스를 새단장한다는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리 제조는 밀가루 제조보다 훨씬 복잡한 기술을 요구했고,

국유화에 빡친 미국인 기술자들이 떠나버렸기 때문에 생산량은 급감했다.

식량난에 가려져서 주목받지 못하지만, 베네수엘라에서는 유리난도 심각하다.

노후되었거나 파괴된 건물들을 보수할 수가 없어서 도시의 경관은 갈수록 험악해지고 있다.

 

 

 

 

 

워낙 유명해서 알고 있는 게이들도 많겠지만 카라카스에 우뚝 선 흉물 Tower of David.

고층빌딩을 짓다가 도중에 외화가 줄어들고 자재 값들이 폭등해서 도중에 중단한 건물이다.

빈민들이 이 빌딩에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세계에서 제일 높은 빈민굴'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 건물에는 유리창이 없는 집들이 훨씬 많다.

 

 

 

AES

 

 

마지막으로 소개할 기업은 미국의 전력 기업 AES이다.

 

그래도 차베스는 AES는 함부로 국유화하지 않았다.

함부로 국유화를 했다가 전력난을 겪으면 자기에게 마이너스라는 인식이 있었겠지.

 

 

 

카라카스 전력

 

 

차베스 정권은 AES의 주식을 사들이는 형태로 돈을 지급했고,

AES의 설비를 사들여서 국영기업 카라카스 전력(Electricidad de Caracas)을 설립했다.

 

 

 

 

 

풍부한 석유 덕분에 화력발전을 하면 전기가 끊기는 일은 없을 것 같지만

설비가 많이 들어가고, 관리를 할 수 있는 고급인력이 필요한 첨단산업이다.

하지만 국영기업이 되어 정권의 낙하산들을 위한 꿀빠는 자리로 변질되자 카라카스 전력도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몇년전부터 전력난 이야기는 심심찮게 흘러나왔고 전력의 부족으로 냉장고를 돌릴 수 없게 되자

베네수엘라인들은 상한 고기를 먹는 지경에 이르렀다.

 

 

 

 

 

전력 인프라는 망가져 가지만 마두로 정권과 카라카스 전력은 그것을 수리하지 않았다.

예산을 착복하는 부정부패가 이미 곪을대로 곪아있는데 인프라를 수리할 예산도 없거니와

어차피 정부에 충성하는 엘리트 집단을 위한 전력만 확보하면 큰 문제는 없었으니까.

그렇게 해서 발생한 것이 정전사태였다.

 

 

사기업을 국유화할 경우, 발생하는 문제점은 대략 다음과 같다.

 

1. 생산성 저하와 비효율성

2. 부정부패의 온상

3. 한번 국영화한 기업은 민영화 하기가 존나게 어렵다. 공기업의 철밥통들이 지랄하니까.

 

 

 

문정부의 괴롭힘에 결국... 올인코리아

 

 

특히 첨단 기술을 요구하는 기업들일수록 국영화되면 쇠퇴는 불을 보듯 뻔하다.

삼성, 애플, 아마존, 록히드마틴 이런 기업들을 정부에서 내려온 꼴통들이 운영한다고 생각해봐라.

 

 

 

시사저널

 

 

조선인들은 특유의 선민의식이 있나보다. 콩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나듯이

베네수엘라를 따라하면 그냥 베네수엘라가 되는 것 뿐인데 말이지.

 

 

청와대는 재난담당부 한겨레
제천 화재때는 재난 담당부 그만둠 한겨레

 

 

앞으로도 대한항공을 이용할 사람들은 계속 이용하겠지.

다만 이제부터 대한항공을 탈 때마다 러시안 룰렛을 플레이한다고 보면 될 거다.

겉으로 드러나는 서비스는 좋은 상태로 있겠지만 내부적으로 분명히 문제가 생길 거니까.

그리고 이런 문제는 비행기 사고가 한번 거하게 터지기 전에는 고쳐지지 않을 거니까.

비행기가 한번 꼬라박으면 세월호에서 죽은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죽을 건 명백하지만 그때가 되면 촛불이나 리본을 들어주는 새끼들은 없을 거다.

 

 

 

 

 

그리고 계속해서 위기를 겪다보면 지금까지 자신들이 어떤 세상을 향해 가고 있는지 

생각해본 적도 없을 이 천진난만한 세상에서 제일 똑똑하고 깨어있는 대한민국의 민주시민들도

 

 

 

 

이렇게 변할 날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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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자동차의 텔루라이드

 

 

위 차량은 기아자동차가 북미시장을 겨냥하여 금년 1월에 출시한 '텔루라이드'다.

제원은 전장 5000mm, 전폭 1990mm, 전고 1750mm, 축간거리 2900mm로 현대의 펠리세이드보다

조금 더 크며 최대 8명까지 탑승할 수 있다. 또 멀티 터레인 모드도 탑재되어있다.

 

 

 

기아자동차의 2019년 1분기 실적 추이 그래프

 

 

 

신차 출시로 그동안 주춤했었던 기아자동차의 실적도 1분기에 깜짝 반등한 것을 볼 수 있다.

텔루라이드의 판매량은 지난 3월 미국에서 5080대가 팔렸고, 그에 다라 영업이익은 두 배 늘어났다.

2분기의 실적이 집계된다면 앞으로 더 나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대차 그룹이 텔루세이드라는 대형 SUV를 북미 시장에 출시한 이유는

북미 공장의 가동률 저하의 원인이 SUV 붐에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사실 미국은 세단보다는 덩치큰 픽업트럭이나 SUV가 잘 팔리는 동네다.(그것도 가솔린 엔진으로)

더욱이 셰일 열풍으로 국제유가가 크게 하락하면서 세단이 찬밥 신세가 된 것.

 

 

 

 

 

덕분에 공장 가동률도 뚝 떨어졌었다.

매년 100%가 넘는 가동률을 유지해왔는데, 작년에는 70%까지 떨어진 것.

기아자동차는 텔루라이드 출시를 통하여 가동률을 최대한 끌어올리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기아자동차 텔루라이드의 옆모습
텔루라이드의 실내 모습

 

 

 

개발단계에서부터 북미 소비자의 취향을 철저히 반영했다는 텔루라이드는 기아자동차 미국 디자인센터가

내외관 디자인을 담당하였기 때문에 이미 외관에서부터 미국적이라는 인상을 주고있다.

기아차는 연 6만 대 판매를 목표로 잡았는데 다행히 3월에 5000대가 넘는 판매고를 기록하였고,

이같은 추세라면 무난하게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더욱이 트럼프가 입만 열면 하는 말이 "미국 투자 늘려라!" 이다보니,

미국에 차를 팔아야 하는 입장에서 현지 공장에 대한 설비 투자 규모도 전년 대비 2배 이상 늘렸다.

그런데 여기에서 기아자동차의 발목을 잡는 일이 발생하는데...

 

 

 

민노총 중앙일보

 

 

텔루라이드가 북미에서 인기를 끌 조짐을 보이자 민노총이 몽니를 부리기 시작했다.

현지 생산을 중단하고 화성공장으로 물량을 돌리라는 어깃장을 놓기 시작한 것.

 

 

 

 

 

 

만약 그들의 투쟁이 받아들여져 미국 생산이 중단될 경우 텔루라이드는 미국에서 망할 것이다.

그동안 사측에서는 텔루라이드가 Made in USA라는 것을 광고해왔고, 미국인들도 이를 좋게 받아들여

이미지가 높아져가고 있는 상황이였는데 난데없이 생산 중단한다고 뒤통수를 때릴 경우

이건 단순히 텔루라이드만 망하는 게 아니라 기아자동차 자체가 미국에서 퇴출당할지도 모를 일.

 

 

 

 

 

항상 이런 식이다. 그저 자신들의 이익 밖에 모르는 탐욕스러운 놈들.

요새는 집회를 할 때마다 가슴팍에 노란 리본달고 뛰쳐나오던데, 도대체 노조가 세월호에는 왜 그리 관심이 깊은지?

솔직히 회사의 이익만을 따지자면 지금 있는 국내 생산조차도 

해외 생산으로 다 돌려야 될 판이구만, 뭔 말같지도 않은 소리야?

 

 

 

기아자동차 셀토스

 

 

뿐만 아니라 오는 7월 인도 시장에서 출시될 SP2(우리나라의 셀토스) 또한 현지 생산을 취소하라고 요구하며

기아자동차측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또다시 전면파업 및 투쟁에 돌입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민노총

 

 

결국 저들이 이룩한 것은 전부 이런 것들이라 할 수 있겠다.

나날이 더욱 과격해지고 있고 아주 발악을 하다시피 한다.

자신들의 요구를 안 들어주면 적반하장 격으로 더 날뛴다.

 

 

 

경향신문

 

 

이게 언제부터 발생한 일이냐면 80년 대 후반 민주화의 바람을 타고 노조가 발호하면서부터라 하겠다.

당시에 노동자들이 중장비를 동원해서 거리를 점거하고 다 때려부수고 사장을 린치하기도 했다고.

그 바람에 국내 제조업의 성장세가 꺽이면서 고도성장의 동력을 잃어버렸다는 분석이 있다.

왜냐하면 마침 이웃나라 중국이 개혁개방을 하고 "이리 오세요" 라고 했기 때문에 특히 산둥 반도같은

경우에는 한국 기업들이 워낙 많이 진출해서 아예 신라방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울 지경이였다고.

 

 

 

 

 

 

국내에서는 기어이 외환위기를 처맞을 때까지 실질임금이 노동생산성을 초과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낡은 습성을 아직까지도 버리지 못하고 있으니 큰일이 아니라 할 수 없다.

정말 언젠가는 공권력을 동원해서라도 노조 중에서도 악질노조만큼은 뿌리 뽑아야하지 않을까?

 

 

 

 

 

 

물론 워낙 악질이라서 보통의 배짱과 각오를 가지고는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상자가 발생할 가능성도 크고 정부가 재벌 편이냐는 정치적 공격을 받을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작고하신 마가렛 대처 수상의 강철같은 의지를 본받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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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서울시장
오마이뉴스
서울의회신문
이용득 의원 매일경제
조선일보

 

 

서울 박원순 시장이 '서울형 노동회의소' 라는 것을 설립하려 한다.

노동회의소란 노동조합에 속하지 않은 미조직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기구라고 한다.

 

 

 

 

현재 노동회의소 제도를 활용하고 있는 국가로는 독일, 오스트리아, 룩셈부르크 등에서 운영되고 있으며,

오스트리아는 노동회의소 회원이 무려 373만명으로 노조 가입자(120만명)의 3배에 이른다. 

 

 

 

강성노조 네이버포스트
강성 귀족노조 타파를 공약으로 내걸었던 홍준표 고발뉴스닷컴

 


노동회의소는 한국에선 아직 생소한 기구라 할 수 있다.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과 달리 파업권을 갖지 않은 유럽식 단체롯,

파업을 무기로 일삼는 양대 노총의 대안 세력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중.

 

 

 

참여와 혁신
아파트 경비원 한국일보
퀵대리기사 한국일보

 


서울시 관계자에 따르면 "양대 노총에 속하지 않은 미조직 근로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이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연구용역을 발주했다"며 "올해 말까지 마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서울에서 일하는 아파트 경비원, 청소원, 퀵대리기사 등

취약계층 근로자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노동회의소 신설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취지다. 

 

 

 

부당해고
임금체불은 물론 인권유린까지 자행되는 것으로 언론에 보도된 전라남도 신안군의 염전노예

 


이들 대부분은 영세 업체 소속 근로자로서 부당해고 임금체불 등의 문제에 직면해도

자신의 이익을 대변해줄 노동조합조차 없는 상태라 할 수 있는데,

이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노동기구로서 노동회의소를 활용할 수 있다는 구상이다. 

 

 

 

지금도 시행되는 노동구제정책, 경기도뉴스포털


노동회의소에서는 노동법률 상담, 근로자의 직업훈련, 취업·전직 지원 상담,

산업재해 예방과 재활상담 등을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예견하고 있다.

또한 민주노총 등 노총이 기득권을 가진 대기업 노조 중심이라면,

노동회의소는 미조직 노동자들의 이익을 제대로 대변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행정적 구제절차 노동OK


노사는 부당노동 행위, 임금체불, 노동조합 설립 등의 문제를 두고 갈등을 빚는 경우가 많다.

이 같은 갈등이 비화해 소송전까지 가기도 한다.

 

 

 

이광호 서울시의원 기자뉴스
서울로컬뉴스

 


서울시의회 더불어민주당 노동부대표인 이광호 의원은

"미조직 근로자를 위한 법률상담을 하고, 노사 갈등이 소송전으로 비화하는 것을 막으며

노사 화합을 도모하는 게 노동회의소의 역할"이라고 밝혔다. 

 

 

 

한국노총
월간 워커스

 


일각에선 서울형 노동회의소가 자칫 한국노총 세 불리기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한국노총 출신 인사들이 주로 한국형 노동회의소 설립을 주장해 왔고,

 

 

 

문재인 공약 이데일리

 

문재인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여 공약집에 넣었지만 끝내 국정과제로 채택되진 못했다.
나쁘게 보면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한 걸음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물론 모든 정책은 그 정책의 입안의도와 다르게 이용되기 마련이니까.

 

 

 

서울 노동권익센터
자치구 노동복지센터 예시

 


또한 기존에 서울시에서는 각 자치구별로 이른바 '취약계층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노동복지센터를 설립하고 있는데,

노동회의소가 만들어지면 기능이 중복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즉 예산낭비라는 셈. 

 

 

 

이른바 서민코스프레라 조롱당한 옥탑방살이 한겨레
옥탑방 살이중인 박원순 서울시장과 강난희여사 중앙일보
한겨레

 


또한 가장 중요한 점은 이를 위한 재정을 어떻게 확충할 것이냐이다.

앞서 언급한 오스트리아에선 세전 소득의 0.5% 미만을 노동회의소 운영비로 의무적으로 걷게끔 법에 명시돼 있고,

2016년 기준 약 4700억원의 재원이 모였다.

반면 우리는 미조직 근로자에게 노동회의소 운영비를 걷기 위한 법적 근거가 없는 상태로 다시 한 번 서울시민의 세금이 박원순 시장의 업적 만들기에 사용될 예정인 셈.

 

 

 

흉물이라 비판받은 서울역 앞 조형물 브런치
서울로 7017의 예상도와 실제 모습 한국일보

 

 

멀쩡한 고가를 없애고 흉물을 만들고, 썩은 신발들로 기괴한 세금농축 조형물을 만들더니

이번엔 박원순 시장께서 새로운 '노동자 세력' 을 키우려고 하는 모양새로 보일 수도 있겠다.

무조건적인 부정적인 시각은 좋지 않지만... 전과가 있으니 뭐 어쩔 수 있겠나.

 

 

 

 

또한 노동회의소가 한국노총 등 기존 노조의 세를 불리기 위한 도구로 전락할 위험성이 있는 것은 자명,

만일 설립된다면 노무사, 변호사 등 전문가가 이른바 노동계 인물들보다 더 많이 참여하는 형태로 인력이 구성돼야 그나마...

 

 

 

 

 

오늘도 3선의 명예로운 박원순 시장님께서는 열심히 일하고 계신다.

과연 이후 결론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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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박정희 소장(당시의 계급)은 '구국혁명'으로 집권한다.

 

 

 

구국의 영웅 박정희 전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은 정권을 취득하고 나서 1962년부터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만든 '경제개발 5주년 계획'에 착수한다.
처음 박정희 대통령의 야심은 어마어마했다. 

정유, 비료, 화학섬유, 시멘트, 제철, 철도 차량, 조선, 자동차, 기계공업 등을 육성하고 싶어했지만...
당시의 상황은 전쟁의 페허 속에서 미국 원조나 받아먹고 사는 나라였기에 모든 것이 무리였다.
어쩔 수 없이 박정희 대통령은 목표를 하향 조정하여 먼저 자립경제 기틀부터  잡기로 한다.

 

 

 




박정희 대통령은 수출만이 살 길이라고 외치며 수출품 생산에 전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이 당시 한국이 수출하던 제품들은 박정희 대통령 하면 떠오르는 중공업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 당시에는 오징어, 누에, 석탄 등이 주력 수출품이었고, 심지어 쥐털과 사람 머리털까지 팔았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박정희 대통령이 꿈꾸는 경제 발전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수출이 늘어나면서 다소 경제 지표는 좋아졌지만, 경제 발전의 한계는 분명했다.
'외화'가 없었던 것이다.
공업화를 달성하지 못한 상태에서 지금 이대로의 원자재 수출만으로는

집안에 있는 걸 내다팔면서 급전을 마련하는 것에 불과했다.

 


1962년, 박정희 대통령은 여러가지 사업들을 포기해야 했지만 제철 사업만은 포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외자가 없어서 끝내 결렬되고 말았다.
그 한을 간직한 박정희 대통령은 기어코 포항제철 건설을 이룩하지만 그것은 먼 훗날의 이야기로,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근심은 나날이 깊어지고 있었다.

 

 

 

 




이른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예측대로라면 1966년에 끝날 예정이었다.
문제는 외화가 없는 상태에서 2차 계획을 세워도 희밍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자칫하면 국내 경제가 외국 자본에 지배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지만,

모험을 하는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바로 외국 자본을 들여오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극빈국이던 대한민국에 돈을 빌려주겠다는 나라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박대통령은 거의 구걸하다시피 외자를 구하려 애썼다. 아니 한 나라의 지도자가 구걸을 하였다.
돈을 마련해서 그 돈으로 반드시 공업화를 이룩해야한다는 박정희 대통령의 신념 때문이었다.

 


다만 당시의 미국은 한국의 공업화 지원에 소극적이었다.

미국 대통령 린든 존슨(케네디는 1963년에 암살당함)은 한국이 공업화를 이룩하면 전쟁을 일으킬지도 모른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60년대초가 쿠바 미사일 위기 등으로 미국과 소련의 신경전이 극에 달해 있었던 시기임을 감안하면

군인 출신 대통령인 박정희를 불안하게 여긴 것도 무리는 아니다.

 

 

 

 





박대통령이 생각해낸 방법은 바로 공산권과 대치하고 있는 처지가 비슷한 서독이었다.
1964년 박대통령은 서독을 방문하고 경제 발전에 대한 노하우를 전수받는다.

 

 

 




위 사진은 1964년, 박정희 대통령이 서독을 방문했던 모습이다.

세계 최 극빈국의 지도자, 왜소한 체구에도 불구하고 저 몸과 눈빛에서 쏟아져 나오는 강단을 보라.


당시 서독의 루트비히 에르하르트(Ludwig Erhard) 총리는 박정희 대통령에게

"지금은 냉전시대이며 2차세계대전의 논리에 사로잡히면 안된다"고 조언을 해주었다.
그 말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영감을 준 것이다.

 

 

 

루트비히 에르하르트(Ludwig Erhard) 총리





이후 박정희 대통령은 전국민의 반발을 부를 정책을 추진한다. 바로 한일국교 정상화이다.
일본을 무조건 악으로 보는 일에 익숙했던 한국인들은 발광했다.

당시 학생이던 이명박도 시위를 했을 정도이니 얼마나 한국인들이 일본을 멀리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박대통령은 세계의 정세를 읽고 있었다.

미국이 뜨듯미지근하게 나오는 상황에서 일본 이외에는 매달릴 데가 없었던 것이다.

 


2차세계대전은 끝났다. 이제는 냉전시대이다. 냉전시대에서 제일 무서운 적은 소련, 중공, 북한이지 일본이 아니었다.
한일국교 정상화야말로 대한민국 현대사의 신의 한 수 였다.

어제의 원수가 오늘의 동지가 될 수 있다는 어마어마한 발상의 전환이었던 것이다.

 

 

 

당시에도 조선인들은 세계정세에 무지하고 감정이 앞선 무리라 할 수 있었다. 경향신문




한일국교 정상화는 그야말로 '신의 한 수' 였다.
그리고 일본으로부터 그토록 기다리던 외자가 들어왔다.
이 자금을 바탕으로 박대통령은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준비할 수 있었고,

우리가 한강의 기적이라 부르는 박대통령의 쾌거는 이 2차 경제개발 계획부터이다.

 


대부분의 후진국 지도자들은 외자를 도입해오하면 상당 부분을 자신이 착복한다.

하지만 박대통령은 정말 힘겹게 돈을 구해왔고 그 돈을 오로지 경제개발에만 썼다.

 

일부 병신들이 한국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었든 경제발전은 이룰 수 있었다고 아가리 놀리는데

정말 그런 새끼들 보면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결코 없다.

 

 

 





한국 현대사도 모르는 반일 정신병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일본이 좋으면 한국을 떠나서 일본으로 가라고.
한국의 경제발전은 한일국교 정상화가 없었더라면, 그리고 일본이 자본을 대주지 않았더라면 불가능했다.
그리고 일본 기업들과의 기술 교류가 없었더라면 한국 기업들은 결코 지금처럼 세계에서 경쟁할 수 없었다.
오징어만 팔다가 중화학공업을 할 수 있었을 거 같냐? 라고 물어도 김대중이라도 할 수 있었다는 헛소리 뿐이니.

 

 

 

재미있다. 역사를 제일 잘 잊는 민족이다.



반일시위 중이라도 일본행 관광 비행기는 만석,

일본산 원자재는 필요없어도 스마트폰, 카메라는 사용.

일본산 게임기, 전자기기 중고거래는 반일 불매와 무관하다는 조속들.

 

일본이 100년의 적이라면 중국은 1000년을 넘게 우리민족을 수탈하고 착취하였으나

아무 소리 못하는 이른바 '대한민국' 사람들.

 

이해할 수도, 이해를 하고 싶은 노력조차 들이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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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벌레 사육조 마저 잘 그려져 있다.

 

 

일본의 헤이안 시대부터는 이런 풀벌레를 채집하여 바구니에 넣거나

정원에 풀어 그 벌레 울음소리를 듣는 문화가 상류층을 중심으로 나타나기 시작해서,

 

 

 

源氏物語(겐지모노가타리)

 

 

일본 최고(最古) 소설인 '겐지모노가타리'에서도 방울벌레의 소리를 즐기거나

방울벌레를 잡아와 정원에 푸는 장면이 나오고

 

 

 

枕草子(마쿠라노소시)

 

 

일본 최고(最古) 수필인 '마쿠라노소시'에서도 방울벌레를 비롯한 우는 벌레들이 바람직한 벌레라고 나오기도 한다.

 

 

 

鈴木春信(스즈키 하루노부)의 浮世絵(우키요에)

 

 

이후 시간이 흘러 에도시대로 가면 이런 풀벌레 사육 문화는 지배층의 문화에서 서서히 서민층의 문화로 내려와

풀벌레들을 파는 상인이나 포장마차 같은 것들도 등장하게 되며,

또한 벌레의 사육 기술도 발달해 풀벌레들의 알을 빨리 부화시키는 방법 등이 널리 퍼지게 된다.

 

 

 

18세기(1750여년경) 그림

위 그림은 1750년경 그림인데 오른쪽을 살펴 보면 곤충용 사육장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만든 일본의 풀벌레 사육장, 대개 대나무를 이용하여 만들어진 것을 볼 수 있다.

지금의 플라스틱 사육장과 비교해 봐도 매우 정교하고,

그 모양이 나름의 미학적 기준에 의해 제작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에도시대 때 만들어진 사육장
벌레를 정원에 풀어 그 울음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이러한 형태가 아니었을까

 

 

또한 대나무나 기타 다른 나무로 만들어진 사육장의 형태 외에도

위의 사진과 같이 이런 식으로 짚을 엮은 것에다가 풀벌레를 넣고 채집통 비슷하게도 썼다고 한다.

 

 

 

 

 

메이지~쇼와 시대 초기에 들어서는 풀벌레를 파는 노점이나 행상인은 여름의 상징으로 여겨질 만큼 흔하였으나,

2차 대전 중 이런 벌레 도매상들이 크게 줄어들었고 전후에는 다시 긴자 등에서도 풀벌레를 팔 정도로

벌레를 파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듯 했으나

 

 

 

일본의 충왕전

 

 

이후 일본이 고도의 경제 성장을 거치면서 풀벌레보단 사슴벌레나 장수풍뎅이 같은

갑충 쪽을 사육하는 것이 더 흔해졌고 현재 풀벌레를 사육하는 건 일부 사람들만 즐기는 문화가 되어 버렸다.

 

 

 

더듬이알락방울벌레
고토 케이로

 

 

현대에 와서 풀벌레 사육이 줄기는 했지만 그래도 키울 사람은 키우는 모양인지

풀벌레나 관련 용품 판매 사이트는 꽤 많은 편이라 할 수 있겠다.

 

위의 사진 속 사람이 풀벌레 파는 사람이데 이름은 고토 케이로 집에서 취미로

20종이 넘는 풀벌레 3500여 마리를 기르고 있다고 한다.

6살부터 풀벌레를 키우기 시작해 현재 59살이 될 때까지 50년도 넘게 풀벌레를 키웠고,

본래 식품업계에 종사하다가 현재는 이런 풀벌레를 팔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대체로 벌레는 개인들이 사가지만 간혹 의류점이나 학교에서 사가는 경우도 있다고 하고

또 취미로 사육하는 과정에서 풀벌레들 양식을 연구하거나

채집 방법이나 장소를 중점으로 책을 내기도 한다.(대부분의 풀벌레 서적은 사육을 중점으로 설명)

 

 

 

사육장 속 귀뚜라미
플라스틱 사육장 속 여치

 

 

 

 

 

여담으로 이건 중국의 곤충 사육통. 일본과 달리 조롱박등을 이용한 사육장이나 밀폐 용기가 많은 편이다.

일본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일본은 사육을 하는 느낌이고, 중국은 가두어 놓는 듯한? 느낌이라 할 수 있다.

중국 역시 당나라 때부터 벌레를 사육했고, 송나라 때에는 귀뚜라미 싸움이 유행하여 이를 이용한 도박이 성행했다.

 

원래 우리가 아는 일본 문화의 원류를 따지자면 중국의 송이라 할 수 있으니깐, 수긍이 가는 전개이다.

 

 

 

영화 '마지막 항제'에 나오는 귀뚜라미통

 

 

우리 조상들에게도 이러한 정취나 문화가 있었을 법 한데, 전해지는 것들이 적어 아쉬운 느낌이 크다.

일본이나 중국과 같이 사소한 것들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재미와 멋을 우리 것에서도 느낄 수 있을까.

김치나 싸이, BTS가 아닌 이러한 작은 것들이 모여 문화의 힘이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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