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의 '용천동굴'이다.

 

위치는 제주도 제주치 구좌읍 월정리에 있으며 용암 활동으로 인해 생성된 동굴이다.

2006년 2월 7일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으며 466호이다.

 

대형 동굴로 그 길이가 2.5킬로미터에 달하고 용암동굴의 생성물이 특징적으로 잘 발달되어 있다.

끝에는 800m길이의 호수가 있고, 그곳 너머는 아직 탐사조차 되지 않았다.

2014년에는 여기서 눈이 퇴화된 물고기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창덕궁

 

창덕궁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재된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고궁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궁궐했을때 사람들은 전부 경복궁을 말하지만 경복궁이 제기능을 한건 임진왜란 전 까지. 

임진왜란때 전소된 이후 200년간은 창덕궁이 법궁이자 정궁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창덕궁의 역사를 보자면, 태종이 1404년에 공사를 시작해 1405년에 완성한 궁궐이다.

원래 태조 이성계는 경복궁을 조선의 법궁으로 세우고 500년 왕조를 열었지만(근데 이성계도 창덕궁에서 승하함)

태종 이방원이 왕자의 난이라는 피바람을 일으킨 궁이다 보니 기피해서 창덕궁을 지은 것이다.

 

 

 

창덕궁 설계도

 

 

경복궁은 중앙축을 중심으로 건물 배치를 한 나름 규율있게 지어진 반면,

창덕궁은 전각들이 지형을 따라 흩뿌려진것마냥 지어졌어 그래서 궁궐의 정문과 정전이 완전히 틀어져 버린 것.

이런 배치는 동서고금을 만연하고 찾아보기 힘들정도이며, 창덕궁은 한국만의 독특한 배치를 가진 궁궐이라 할 수 있다.

 

 

 

 

 

창덕궁의 총 책임자는 박자청이란 인물로 환관이였음에도, 장관급인 판서자리에 까지 올랐던 인물이다.

또한 경복궁에서 가장 아름답다던 경회루를 설계한 사람도 바로 이 박자청.

근데 이 박자청은 사실 엄청난 강심장이자 배짱아였다고 볼 수 있는데,

 

 

 

 

 

태종이 박자청에게 인정문의 밖의 마당을 똑바로 직사각형으로 만들라고 지시를 했는데,

이를 씹고 그냥 사다리꼴로 만들었고,

이것때문에 복도로 쓰여야할 건물까지 허물고 다시 지으라니까 거다가는 그냥 담만 쌓아버렸다.

 

 

 

 

 

 

결국 태종은 나사가 풀려 귀양까지 보냈으나 금방 복귀했고 다시 총책임자로 인명됐다. 

형제를 죽이고 궁궐에 피바람을 일으켜 정권을 잡았던 태종 이방원의 뜻을 꺾어버렸으니

정말 배짱이 대단했던 인물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중국 북경의 자금성

 

 

조선 초기부터 왕들은 경복궁을 피하는 경향이 좀 있는데,

아무래도 지금같이 나무나 녹지가 있는게 아니라 온통 전각뿐이니 숨이 턱 막히고 사람살기에 답답하다고 느꼈을 듯.

이는 한국만 그런게 아니라 중국도 비슷해 자금성 정말 어마어마하게 크고 전각들 하나하나가 왠만한 건물 크기다.

그래서 중국의 명.청대 황제들도 자금성뿐 아니라 넓은 정원과 호수가 갖춰진 중난하이에도 많이 머물렀다고 한다.

 

 

 

임진왜란

 

 

그렇게 시간이 흘러 정말 한국사에서 조선 전기와 후기를 구분짓는 만큼 굉장히 중요한 전쟁인 임진왜란이 발발했다.

이때 경복궁은 노비놈들이 노비문서 없앨려다 전각에 불을 질렀는데 이게 번져서 전소되고,

창덕궁은 당시 왜군들이 모두 불질러 태워버렸다.

 

 

 

흥선 대원군

 

 

그러다 인조때 되서야 경복궁 대신 창덕궁을 복원 시키면서 부활했다.

이는 근대에 흥선대원군이 조선 경제를 박살 내가면서 다시 경복궁을 지을때까지 사용되었는데,

한마디로 조선 중후기는 이 창덕궁이 조선 왕조의 정궁이라 할 수 있겠다.

 

 

 

창덕궁 인정전

 

 

창덕궁이 경복궁 대신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유로는 보존이 나름 잘 되있었기 때문이다.

돈화문,인정전,신정전등 많은 건물들이 원형 그대로 남아 있어 그 가치가 높았다.

반면 경복궁은 일제가 85%를 허물고, 근정전 앞에는 조선총독부를 세워 우리의 자존심을 짓밟았지

만약 경복궁이 근대에 복원되지 않았더라면 도리어 창덕궁이 그 치욕을 당했을 것이다. 

 

 

 

창덕궁 인정문

 

 

인정문은 인정전으로 들어가기 위한 문으로 왕위 계승의 준비 장소였다.

조선 전기에는 연산군이 중기때는 효종, 현종, 숙종, 영조 

후기때는 순조,고종이 이곳을 거쳐서 왕위에 즉위했다. 

 

 

 

창덕궁 인정전

 

 

인정전은 창덕궁의 정전이자 태종때 지어졌는데, 이때는 지금보다 규모가 작았다고 한다. 

그리고 임진왜란때 왜군들이 태워버리고 이후 광해군 때 복원되어 

기능을 상실한 경복궁의 근정전 대신 이곳에서 행사나 식이 거행되었다. 

인정전은 창덕궁의 특징인 자연과의 조화과 가장 잘 나타난 건물이다.

뒤에 나무와 숲등이 어색하지 않고 아름답게 잘 어울러져 있기 때문.

 

 

 

인정전의 기와

 

 

그러다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황실 문양이였던 이화문양을 용마루에 박아 넣었고, 

 

 

 

 

 

인정전의 창호색은 원래 근정전과 같은 색이였으나 황제를 뜻하는 노랑색으로 바꿨고

 

 

 

 

 

내부는 노란색 천으로 장식한 커튼과 천 그리고 전구등을 설치했다.

그리고 옥좌(용상)의 색깔은 원래 갈색이지만 이때부터 황색으로 만든 옥좌(용상)을 썼다.

자기 나름대로 황제임을 나타내려 꾸몄던 것.

 

 

 

일제강점기 인정전

 

 

하지만 일제가 창덕궁 인정전 뜰에 있던 품계석을 모두 없애고,

뜰에 화초나 잡초를 심어 훼손하였다.

지금 품계석 복원과 잡초제거는 모두 1994년 김영삼 정권때 이루어진 것이다.

 

 

 

창덕궁 선정전
창덕궁 선정전

 

 

선정전은 창덕궁의 편전으로 유일하게 청색 기와를 사용해 쌓은 건물이다.

근대에 들어서 인정전과 마찬가지로 전기시설이 들어섰지만,

일제강점기때 복도각을 헐어버리면서 훼손시켰다. 

결국 1885년에 보물 제814호에 지정되면서 복원 작업을 거쳐 1997년에 복원된 것이다.

 

 

 

창덕궁 희정당

 

 

조선의 왕이 침전으로 이용하던 건물이였으나, 선정전에서 했던 편전의 기능을 희정당으로 옮겼고

선정전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는 건물로 쓰이게 되었다. 

그러나 1917년 화재가 나서 전소가 됬었고 이를 복원하겠다고

일제가 경복궁의 침전인 강녕전껄 뜯어다가 재건시켜 버렸다.

 

 

 

희정당의 내부

 

희정당의 내부를 보면 근대 역사가 느껴지는데,

기존 궁궐이 아닌 쪽마루에는 카펫이 깔려있고 창문에는 유리가 끼워졌으며 

천장에는 샹들리에가 설치되는등 서양식 문물이 설치되어 있다.

 

 

 

창덕궁 후원(비원)
창덕궁 후원(비원)
창덕궁 후원(비원)

 

 

창덕궁 후원은 우리 선조들이 얼마나 자연을 중요시 했는지 잘 보여주는데,

정궁 안에 이런 화원을 만들어 나지막한 언덕, 계곡과 어우러진 숲과 정원은 가히 아름답다고 할 수 있다.

 

 

 

창덕궁 대조전

 

 

대조전은 희정당과 마찬가지로 1917년 화재때 소실됬는데,

일제는 이걸 복원하겠다고 이번엔 경복궁 왕비 침전인 교태전 헐어 얻은 자재로 복원했다.

그리고 마지막 황제였던 순종황제가 붕어한곳이 이 대조전이고 

1910년 나라를 뻿길때도 이 대조전에서 조선왕조가 끝났다.

 

 

 

창덕궁 낙선재
창덕궁 낙선재

 

 

낙선재는 헌종이 후궁을 위해 지은 전각이였는데,

이게 훗날엔 왕이 죽고 그 왕비가 소복차림으로 잠깐식 머물렀던 장소다.

우리에게는 마지막 황족이였던 영친왕과 이방자가 머물던 곳으로 유명하다.

특징이 있다면 너무 궁궐같지 않을정도로 소소하게 지어졌단 것. 

 

 

 

창덕궁 성정각

 

 

성정각은 왕세자가가 학문을 갈고 닦기 위해 공부를 했던 곳이다.

정면 6칸에 측면 2칸 ㄱ 자 형태의 작은 전각으로 반대편에 바로 왕세자의 서고와 도서실이 있다.

 

 

 

창덕궁 영화당

 

 

영화당은 부용지 동쪽에 있는 전각으로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각지붕을 하고 있다.

광해군때 신축됬으나 현재 전각은 1692년 숙종이 다시 만든거라 전해진다.

 

 

 

조선시대에 그려진 창덕궁, 동궐도

 

 

 

위의 사진에서 공통된 부분을 찾을 수 있었는가?

비록 말로 형언하기 어렵더라도 어느정도의 익숙함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이것을 일본에 남아있는 한국식 건축양식, 일명 고려문(高麗門)이라고 한다. 

 

 

고려문은 임진왜란 때 1592년에서 1598년 사이에 건설되기 시작한

한국식 건축물로 임란 전쟁중에 일본으로 전해졌다고 한다. 

 

원래는 성문에나 쓰였지만 에도 시대 이후부터는 전쟁이 없어지고 일본도 나름 평화의 시대라

성곽 혹은 신사나 절 심지어는 마을의 출입구로 쓰였다.

 

 

 

 

위의 사진들은 범어사의 고려문 양식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한국에선 이를 고려문이라 부를 까닭이 없다.

우리에겐 그저 전통 건축 양식의 일부일 뿐이므로 일주문이라고 부른다.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한국에선 그냥 절의 현관 용도로만 쓰이고 있다고 보면 된다. 

본래는 해탈문이 맞는건데, 이 해탈문이 절과 세속을 가르는 경계가 된다고 한다.

해탈문의 형식 중 기둥을 일렬로 한 줄 세워 지붕을 얹은 것을 일주문이라고 하는데,

현재는 그냥 통칭으로 다 일주문이라고 부른다.

 

 

 

개화기 일본

 

근데 지금 일본에는 고려문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고 한다.

아무래도 메이지 유신을 거치고 서양식 건축양식이 대중 보급되면서 

현대식 건축물들로 대거 교체된걸로 추정된다.

 

 

 

 

 

간만에 먹을거리에 대해 포스팅하게 되었습니다.

 

한동안 여러 군데를 놀러 다니게 되어 시간이 부족하여 글을 잘 쓰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앞으로도 또 다가오는 설 연휴가 있어서... 연휴가 끝날 때 까지는 컴퓨터 앞에 앉을 일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전에 미리 간만에 갔던 영등포의 중국집에 대한 포스팅을 하려고 합니다.

 

 

 

 

중식당 하면 모름지기 기름진 음식과 기름을 씼어내릴 도수 강한 술입니다.

 

보통은 탕수육 등의 기름진 음식과 고량주의 조합을 좋아하는데요, 이번에는 점심때 만난 관계로 간단한 식사 위주로 먹었습니다.

 

 

 

 

그럼 영등포 중국집 송죽장에 대해 글을 써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먼저 처음부터 외관을 보여드리자면,

 

 

 

 

 

 

파란색 간판에 흰 글씨로 송죽장이라고 커다랗게 쓰여 있습니다. 또한 옆에 작은 간판에는 중화요리 송죽장이라 적혀 있습니다.

 

이곳의 위치는 다음과 같습니다.

 

 

 

 

 

 

영등포 송죽장의 위치는 지도에서 확인하실 수 있다시피 영등포역 6번, 3번 혹은 5번으로 나오신 뒤에 횡단보도를 두어번 건너셔야 합니다.

 

신세계백화점 영등포 맞은편에 위치해 있는데요, 저희가 찾아갔던 시간은 대략 12시가 좀 넘은 점심시간이었습니다.

 

이곳을 소개했던 지인의 말에 따르면 맛집이라고 웨이팅이 있을 수도 있다고 해서.... 상당한 기대감을 안고 천천히 걸어서 이동했습니다.

 

 

 

 

 

 

안으로 이동하면 고급스럽지는 않은, 근데 꼭 화교가 운영할 법한 인테리어가 나오는데, 음식 맛과는 무관하여 사진조차 찍지 않았습니다.

 

가게에 대한 정보를 주고자 했다면 찍었어야 하는데, 아직은 많이 부족하여 죄송할 따름입니다.

 

위 사진은 메뉴판입니다. 물론 메뉴가 벽에도 붙어 있고 여기저기 붙어 있지만 메뉴판을 따로 가져다 주기는 하더라구요.

 

 

 

 

 

 

메뉴는 위의 사진과 같습니다. 아마 다른 블로그 포스팅을 보다 보면,

제가 갔던 시기가 2019년 이전의 메뉴판이라 가격의 변동이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여기서 미는 두 개의 메뉴가 고추짬뽕과 가지볶음인데요,

 

 

 

 

 

 

사진을 가격을 가려버렸습니다. 간풍가지 또한 가지튀김과 동일한 가격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왜 小 사이즈와 中 사이즈 밖에 없는지 이해가 좀 안갑니다. 中 大로 하기엔 양이 적은가 봅니다.

 

 

 

 

 

 

 

 

저희는 이렇게 테이블에 마련된 식사용 메뉴판을 보고 주문하였습니다. 각각 고추짬뽕 곱빼기, 간짜장과 삼선볶음밥, 탕수육을 주문했습니다.

 

 

 

 

 

 

1. 고추짬뽕(7500원에서 곱빼기로 면의 양을 추가한 모습입니다)

 

  국물 맛은 고기국물이 아닌 여타 다른 중국집과 비슷한 해물 국물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보통의 짬뽕 비주얼은 홍합 등이 가득 들어있는 모습에 반하여 여기서는 고추와 채썰은 야채, 커다란 오징어 덩어리가 주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고추의 칼칼한 맛 보다는 볶은 불향이 더 강해서 칼칼 시원하다기 보다는 마치 매운 칼국수와 같은 걸쭉한 매운 맛이 많이 났습니다. 가격에 비해 뛰어나지도, 못나지도 않은 준수한 맛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간짜장의 경우는 저희가 시킨 메뉴 중에서 가장 별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간짜장이라는 음식의 진수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저이지만, 제가 맛있다고 생각한 간짜장은 양파가 막 볶아져 나왔다는 느낌과 반쯤 익은 아삭함이 살아 있고 고소한 맛이 살아있는 것인데, 굳이 간짜장으로 먹어야 될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약간은 눅눅하다는 느낌이 많이 났습니다.

 

 

 

 

 

 

 

 

  삼선볶음밥은 사진으로 그 맛을 담아내지 못해 아쉽습니다. 밥알 하나하나 고슬하게 잘 볶아졌다는 느낌이 많았고 느끼하거나 기름지지 않았습니다. 비록 계란이 골고루 퍼져 볶아지지는 않았지만 섞어진 재료가 위의 표면과 마지막 숟갈까지 균일하게 잘 퍼져 있었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리고 햄이 들어있어서 실망할 뻔 했으나 건해삼을 같이 볶은 것에 신선함을 느꼈고 생각보다 맛이 괜찮았습니다. 위의 두 식사보다 삼선볶음밥이 가장 맛있었기 때문에 마냥 실망하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4. 탕수육 中

 

  대망의 탕수육입니다. 양은 보시다 시피 비주얼적으로는 많아 보이지 않습니다. 게다가 소스의 야채 구성이나 색은 여타 다른 중국집과 차별화된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소스의 맛 보다는 탕수육 자체가 상당히 질이 좋습니다. 고기가 균일하게 손질되어 있고 질기지 않습니다. 튀김은 적절한 두께와 바삭함, 계란이 많이 섞였음을 어필하는 노란 빛깔의 튀김옷이 매우 군침을 돌게 했습니다. 송죽장에서 먹은 식사 메뉴중에서는 과연 탕수육이 으뜸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 결론 >

 

1. 찾아가서 먹을 만한 맛집이라 하기에는 부족하나, 먹어보지 않은 가지 요리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2. 영등포 근처에서 근무한다면 주변의 다른 음식점에 도전하기 보다는 송죽장을 찾을 것 같다.

 

3. 먹고 난 뒤 느끼한 기름맛이 많이 남지 않았다. 탕수육은 정말 맛있다.

 

 

 

사실 이 이후로도 많은 음식들에 대해 얼른 쓰고 싶습니다. 얼른 설 연휴가 끝나기를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다음에는 동해안 지역의 맛있는 음식들에 대해 쓰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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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포스트 : 24시 누름돌 생고기 김치찌개  (1) 2019.01.19



맛있는 밥을 먹었던 기억을 회상하는 것은 행복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맛집과 맛있는 음식에 대한 자료와 정보를 찾아보곤 하는 것 같습니다.


저도 제가 이제까지 살면서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먹었던 맛있는 음식들에 대해 쓰고 싶었습니다.


다만, 항상 맛있는 음식만 먹고 살 수는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저는 무엇을 어디에서 먹었던 간에 솔직 담백한 후기를 간결하게 남기려고 합니다.


그 첫번째 음식으로 24시 누름돌 생고기 김치찌개 입니다.







24시 누름돌 생고기 김치찌개는 아시는 분은 아시다시피 프랜차이즈로 운영되는 매장입니다.


전국 곳곳에서 만나볼 수 있을 것이라 예상됩니다만, 저는 경기도 용인 동백점에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위치는 다음과 같습니다.












저는 어느 음식점이나 기타 방문처를 검색하더라도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이 주차 가능 여부입니다.


그러나 주차가 가능하다고 포털 사이트 검색 등에 표시를 해 놓고 막상 찾아가면 도로변에 주차가 가능하다고 하거나


아니면 인도 위에 불법 주차를 유도하는 경우도 많이 경험해 보았습니다.


저는 차를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에 불법주차나 사고의 발생 여지가 많은 곳은 주차를 꺼리게 되고,

차라리 근처의 유료주차장이나 공영 주차장을 이용하느 편입니다.


24시 누름돌 생고기 김치찌개 동백점에서는 해당 건물 지하주차장에 주차하시고, 나가실 때 카운터에 말씀하시면 주차비가 자동으로 정산되어 무료로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저는 주차에 관한 정보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주차장 전경이나, 건물 외관 등을 찍었어야 했는데... 이러한 포스팅이 처음이다 보니,
미처 거기까지 생각 못해 내부의 모습부터 보여드리게 되었습니다.


내부의 모습은 보시는 그대로 이구요 많이 좁거나 넓지도 않습니다. 제가 방문했던 시간이 평일의 이른 오전이다 보니
대리기사로 추정되시는 분들 몇분이 식사를 하고 계셨습니다.








저는 친구와 함께 방문했기 때문에 김치찌개 2인분과 계란말이를 주문했습니다.


저 또한 인터넷에서 블로그 후기를 검색하여 찾아갔던 곳이라 가격이 5천원으로 알고 있었는데,

경기가 많이 어려운 만큼 물가 인상의 바람을 피할 수는 없었던 모양입니다. 1인분에 5800원, 계란말이 4000원 이었습니다.










테이블에는 다른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게 덜어 먹을 수 있는 접시와 물컵, 간장이 있습니다.

간장은 밑반찬으로 날김을 먹을 수 있게 되어 있기 때문에 제공되는 것 같습니다.






.....................??



처음 나왔을 때의 비주얼인데요, 생각보다 끓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됩니다.


생고기라서 고기가 완전히 익을 때까지 끓여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육수가 차가운 상태로 나오는데
가장 강한 화력을 유지해도 생각보다 잘 끓지를 않네요..

게다가 김치찌개를 굳이 사먹는다 함의 가장 큰 이유는 저의 경우는 풍부한 건더기라고 생각 하는데.. 일단은 국이 나왔습니다.





날김과 무생채, 밥은 무제한 셀프로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계란말이는 사진에서 보시는 양이 4천원인데 그 맛과 양은 준수하다고 생각했습니다.








<< 결론 >>


1. 접근성 : 접근성을 논하기 이전에 멀리서 대중교통을 타고 올 가치가 있는가 싶고,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주차하기 편리합니다.


2. 맛 : 국물이 묵은지를 이용한 김치째개도 아니고, 풍부한 돼지고기를 통해 감칠맛을 내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시고 묽습니다.
         다만 즉석에서 신선한 재료를 통해 바로 끓여 먹는 것으로 이 맛에 대한 수요층은 있을 것 같으나, 저의 개인적인 입맛에는 안맞습니다.


3. 가격 : 가격이 5800원이라면 다른 음식에 비해서는 저렴한 것으로 사료됩니다.



이것으로 솔직한 음식 후기 첫 포스팅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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