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요즘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vs. 야당 자유한국당의 구도가 워낙 강하기도 하고,

진보세력(정당) 인지도가 낮아서 잘 언급되지 않는데,
한국 좌익세력의 역사와 그 양상을 간략하게 설명해보고자 한다.

 


좌익정당은 일제강점기의 한인사회당과 조선공산당,

해방 이후 남한의 남조선노동당(약칭 남로당), 이승만 정권 시절 조봉암의 진보당,
정당이 아닌 전위조직으로는 박정희 정권 시절의 통일혁명당과 남민전 등 역사 속에서 여럿 존재했지만

여기서 소개하는 좌익정당은 80년대 재야, 학생사회의 사상논쟁으로 형성된 운동권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1. 운동의 두 경향, 엔엘(NL)과 피디(PD)

 


80년 광주사태에 미국이 관여하고 미국이 전두환 정권을 사실상 승인하면서

운동권에는 기존과는 다른 경향이 대두한다.
70년대까지 민주화 진영에는 소수 급진파(남민전이나 통혁당 등)이 존재했지만,

주류는 반독재민주화, 미국식 자유주의를 지향했다. 
야당에서 그나마 좌파적이었던 김대중조차도 박정희 정권을 비판하는 주요 근거로 '자유'의 부재를 들었고,

나중에는 미국에 의해 목숨을 구하기도 하는 아이러니가 있었다.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 1982

 


그러나 '오월광주'의 경험을 거치며 미국에 대한 반감이 운동진영 전반에 크게 생기게 된다.

이로 인해 이른바 반미자주화운동이 촉발되고, 기존에 소수였던 사회주의 이념이 주류로 올라서는데,

광주와 부산, 서울 등에서는 학생들이 미문화원을 방화하거나 점거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칼 마르크스

 


처음에 적극적으로 수용된 이념은 마르크스주의, 마르크스-레닌주의였다.

이미 60년대에 전투적인 학생조직이 있었고 조총련이라는 구심이 존재하는 일본에서

레닌, 모택동, 티토, 카스트로 등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이론이 학생사회에 전해지게 된다.

 

 

 

강철서신

 


그러다가 1986년, 전국 대학가를 중심으로 하나의 문제적 팜플렛이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강철서신의 강철, 김영환

 


바로 이른바 '강철서신'이다. 이 팜플렛은 대학가에 북한의 주체사상이 퍼지는데 기여했다.
여기서 '강철'이라는 필명을 사용한 사람은 김영환으로, 이석기와 함께 민족민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되기도 한,

주사파의 대부와도 같은 사람이지. 지금은 전향해서 북한민주화운동을 주장하고 있다.

 

 



주체사상은 맑시즘, 레닌주의보다 이론이 쉽고 명료했다.

또 과학과 이성을 강조한 레닌주의와 달리 품성과 대중, 민족주의를 말한 주체사상은

이성을 거부하고 양은냄비 들끓듯이 끓어대는 저열한 한국인들의 성향과도 맞아떨어졌다.

 

 


이 결과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하는 NLPDR(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 혁명론)이

학생운동권의 다수파 지위를 차지하게 된다.

 

 


반대로 마르크스-레닌주의나 고전적 맑시즘을 지향하는 세력은

CA(제헌의회파)-ND(민족민주)-PD(민중민주) 등으로 계승되며 소수파의 자리로 남게 된다.

CA의 상당 부분은 NL로 떨어져 나가게 되고, 최종적으로 남은게 PD 정파들이다.

 


그렇다면 NL과 PD가 각기 다른 사회주의 이념을 지지한다는 것 이외의 차이점은 뭘까?
크게 보면 이 둘은 '한국 사회의 성격과 발전'단계에 따른 '변혁 수행의 방법론' 면에서 차이를 보인다고 할 수 있겠다.

 

 


PD는 한국이 미국 등 제국주의 국가에 예속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미 자본주의와 노동계급이 발달한,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 체제로 보았기 때문에, 이 사회에서의 주요모순은 자본가(재벌)과 노동계급간의 모순이다.

따라서 러시아에서 성공했고 독일과 헝가리에서 시도된 인민민주주의 혁명(PDR)을 곧바로 수행해야 하는 것.

 

 


한편 NL은 한국이 미국 제국주의에 예속된, 식민지 반(半)자본주의 혹은 식민지 반봉건사회라고 보았다.

이런 사회에서는 사회주의적 생산관계를 수립하는 인민민주주의 혁명(PDR) 이전에 민족해방(NL) 과업을 실행해야 한다.

즉 미제국주의 그리고 그들과 결탁한 매국적인 지배세력(당시에는 신군부와 민정당, 재벌과 고급관료들)을 타도하고,

북한과의 연방제 통일을 실시해야 하는 것이지.
이 이론은 흔히 자주(반미자주화)-민주(반파쇼민주화)-통일(조국통일)이라는 3단계 과업으로 요약된다고 할 수 있다. 



2. 6월항쟁과 노동자대투쟁

 

 


이렇게 대학사회에서 혁명 이념에 대한 논쟁이 거세질 즈음, 사회 전반에서 민주화에 대한 요구가 전개된다.
김영삼, 김대중같은 자유주의 야당뿐 아니라 좌파적인 운동권들도 여기에 가세하면서 말이다.

 

 

 

6.29 선언을 발표하는 노태우 전 대통령

 


여기서 NL이 주도권을 잡는다. NL은 주체사상 특유의 '대중노선'에 기반하여

일반국민들이 이해하기 쉬운 '호헌철폐 독재타도', '직선제개헌'을 슬로건으로 내세운다.

이 슬로건은 범국민적인 지지를 받았고 결국 신군부는 6.29선언을 통해 민주화에 합의하게 된다.


 

1987년 7월부터 9월까지 전개된 노동자대투쟁



정치적 자유화가 촉발되자 이제는 노동자들이 들고 일어난다.

기존 경제개발에서 열악한 처우를 감내해야 했던 산업역군들이 임금인상, 처우개선, 노조 인정 등을 요구하며 대규모 파업에 들어가게되었다.
그 일환으로 1987년 7월부터 9월까지 전개된 '노동자대투쟁'.

전국적 항쟁이었고, 특히 울산과 창원 등 경남 중화학공업 벨트에서 거셌다.
기존 진보진영의 주도권이 학생에게 있었다면, 이제는 노동운동도 그에 준하는 영역으로 격상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김대중과 김영삼

 


그런데 6월항쟁 이후 치뤄진 대선에서 민주화세력인 양김이 단일화하지 않고 분열한다.
결국 기존 신군부의 계승자로 인식되던 노태우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사태가 발생.

 


참고로 NL은 김대중을 '비판적' 지지했고, PD는 백기완이라는 사람을 독자후보 민중후보로 추대했다.
이는 NL과 PD의 사상적 차이에서 기인하지.

NL은 우선 인민민주주의 혁명 이전에 민족해방과 민주화부터 이루는게 중요하다고 보았기 때문.

 


3. 혁명의 종언과 지적 아노미

 

 

넘어간 레닌의 동상

 


이렇듯 한국에서는 좌파적인 흐름이 강해지고 있었지만 전지구적으로는 반대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다.

사회주의 이념모국 소련에서는 레닌 동상이 끌여내려지고, 동독에서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다.

중국에서는 인민의 군대가 인민을 학살하는 참극(천안문 사태)가 벌어진다.
이런 세계적 흐름에 많은 운동권 학생, 지식인들이 충격을 받아, 그때부터 이들은 다양한 흐름으로 분화되기 시작한다.

 

 


첫번째, 여전히 진보의 가치를 지키면서 다양한 전략을 모색하는 분파들.

 

 

민중당, 이재오와 김문수 등이 참여했다. 합법정당운동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1990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약칭 전국연합), 현 한국진보연대의 전신이며 NL계열의 빅텐트격 단체이다.
소련과 달리 북한은 망하지 않았기 때문에, NL은 PD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분화하였다.

 


두번째, 민주당과 신한국당(현 자유한국당의 전신) 등 제도권 정당으로의 전향

 

 

민주당과 보수정당에 당적을 둔 운동권 출신 의원들



세번째, 시민운동 혹은 포스트모더니즘에 기반한 새로운 운동 지향

 

 

 


과거의 '민중운동, 민족해방운동, 혁명운동'을 청산하고 온건한 '시민운동'의 추구.

박원순이 한국 시민운동계의 주요 인사이다. 그와 더불어 페미니즘, 생태운동 등에 대한 관심도 증폭된다.



4. 운동권의 입지 약화


이렇듯 세계적으로 자본주의와 자유주의가 대세로 되고, 사회주의 블록이 무너지는 과정에서

상당수 운동권들이 우경화되고, 운동진영에 대한 일반국민의 지지도 줄어들게 되었다.
보통 국민들은 '이미 민주화되었는데 무엇 때문에 그렇게 과격하게 투쟁을 하냐'와 같은 사고로 운동권을 바라보았다.

 

 

91년 5월 투쟁

 


87년 6월항쟁과 달리 91년 5월투쟁은 결과적으로 실패한다.




한총련 2기 출범식, 조선대학교, 1994년

 


기존 '전대협'을 발전적 계승한 '한총련', 위 사진은 한총련 2기 출범식. 조선대학교, 1994년



 


한총련이 주도한 '연세대사태'는 김영삼에 의해 진압당한다.


 

 


이종권씨 치사 사건, 이석씨 치사 사건 등으로 한총련은 국민적 지탄을 받게된다.
(각각 전남대와 한양대에서, 학생들이 일반시민을 프락치로 오해하여 고문한 사건)
이렇게 사회적으로 고립되자 운동권은 더욱 강경해지게되는데, 


 

21세기 진보학생연합

 

 

한총련의 강경한 흐름에 반대한 온건NL과 온건PD가 '21세기진보학생연합'을 결성하기도 한다.

그러나 화려한 전성기는 오래가지 않고 곧 해소되었다.



5. 국민승리21, 그리고 민주노동당

 

 

 

1998년 국민승리21의 대통령 후보로 나선 권영길

 


이렇게 학생운동권이 입지 약화와 몰락을 거듭하고 있을때 쯤,

주로 학생운동권, 노동운동 출신으로 구성된 진보인사들은 합법정당 건설 운동에 몰두한다.
김영삼이 대통령 하던 시절인 97년 노동법 개정안이 날치기가 되자, 노동계는 위험을 직감하고 집권을 꿈꾸기 시작한다.
그래서 민주노총 아재들이 집권 해보자고 '국민승리21'이라는 조직을 결성,

그 유명한 권영길을 대통령 후보로 내세워 98 대선에 도전한다.

 

 

민주노동당

 


물론 김대중 슨상님이 당선이 되었다.
그러다가 2000년도, 국민승리21은 '우리도 정당 운동 제대로 한 번 해보자!' 하면서 민주노동당을 창당한다.
민주노동당은 2000년 총선에 출마했지만, 단 한 사람도 당선시키지 못하고 사장당한다.


 

민주노동당 심상정, 노회찬, 권영길 등등



그런데 2004년에 민주노동당이 사고를 쳤다.

지역2석, 비례8석, 총 10석의 국회의원을 탄생시킨 것이다.



6. 낡은 사상의 지배

민주노동당은 원래 PD계열이 주축이 되서 창당되었다.

그중에서도 혁명적 좌파말고 사민주의를 지향하는 온건PD가 주도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권영길은 NL에 가깝다.)

 

 

 


그러다 전국연합에서 활동하던 NL들이 민주노동당에 들어가 야금야금 잠식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게된다.
이게 그 유명한 '군자산의 약속'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마어마한 사건이 하나 터지게 되는데,



일심회 사건

 


이른바 일심회 사건이라고, 아주 어마어마무시한 빨갱이 사건이었다.

민주노동당 당직자랑 당원들이 몰래 북한에 넘어가서 "조선로동당"에 가입했다가 적발된 것.
그때 난리가 났지만, 물론 민주노동당은 "국가정보원이 조작했다" 며 발광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민주노동당 내 NL계파와 PD계파가 있었는데
PD는 관련자들의 행위가 패당적이라고 보고 처벌을 요구했지만,
다수파였던 NL이 무시하고 흐지부지된다.
한편 민주노동당에 합류하지 않은 신좌파 성향의 '사회당'이라는 정당도 존재했다.

 

 

 

사회당


사회당은 '반자본주의 반조선노동당'을 기치로 북한을 억압적인 관료국가라며 비판했지.
이렇게 크게는 80년대에 형성된 NL과 PD의 해묵은 갈등,

그리고 그 정파 안에서도 다양한 의견으로 갈려 좌익세력은 싸움을 반복하게 된다.



7. 민주노동당의 분열과 진보신당

 

 

 

 


어쨌든 이 일심회 사건이 터지니까 민주노동당 내 온건PD계파(사회민주주의 성향)인 심상정, 노회찬이

일심화 사건 관련자를 당에서 제명시키자는 주장을 하게 된다. 그러자
NL이 '국정원 공안탄압 중단' 을 내세우며 극렬 저항하게 된다.

결국 당 대의원 대회에서 '일심회 관련자 제명안'을 심상정이 제출했다가 부결당한 뒤
PD계파가, "종북주의자랑 못해쳐먹겠네" 하면서 탄생한게 바로 '진보신당'이다.
2008년 민주노동당 종북세력과 결별하며 독자노선을 추구하게 된 것이다.



8. 아, 다시 통합하자!!

그러다가 2009년에 노무현이 투신 자살한 후,
이 자살한 노무현의 명예를 팔아먹으려고 만든게 바로 국민참여당이다.

 

 

 

유시민과 국민참여당

 


그러나 지방선거에서 참패. 그러다가 2012년 총선이 다가오면서
여러 좌익세력들은 위기의식을 가지고 서루 규합하여
민주노동당 + 진보신당 + 국민참여당이 모여서

 

 



우리에게 아주 친숙한, 이 통합진보당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이들은 2012년 총선에서 무려 13명의 국회의원을 만들어 내는 쾌거를 이룬다.
이때도 좌익세력들은 이 기세로 2016년에 집권할 수 있겠다는 희망이 터져나오고 있었다.
물론 이때의 당선은 독자적인 역량이라기 보다는 민주당과의 협력으로 인한 결과였지만 말이다.

 

 

 


NL이 주구장창 주장해온 '민주대연합론'의 2012년 버젼인 '반MB 야권연대'가 실행되었다.


'민주대연합론'이란?
민주대연합론은 1930년대 코민테른의 '반파시즘 인민전선'에서 기초한 이론으로, 당장 사회주의를 추구하기 보다는,
한 사회에서 가장 '반동적'이고 '보수적'인 세력에 대항해 공산당부터 온건우파까지 다 단결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이론은 이후 중국 베트남 조선 등 '사회주의 혁명 이전에 외세와 결탁한 매국노들부터 무찌르자' '양심적, 개혁적 자본가 분파와는 일단 협력하자(나중에 토사구팽하자)'는 민족해방이론에서도 차용한다.

NL은 한국을 미국의 식민지로 봤기 때문에 이런 20세기초중반 동아시아 독립운동가들이 사용했던 방식을 썼던 것이다.


 

이정희, 김재연, 이석기, 심상정, 노회찬, 박원석, 정진후, 김제남, 김선동, 이상규 등등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점이,
유시민이 이끄는 '국민참여당계'는 원래 NL과 PD라는 진보진영 양대세력이 들어가지 않은 세력이다.
오히려 친노 성향으로 민주당에 가깝다고도 할 수 있다. 근데 이들은 왜 구좌파들과 통합을 했을까?
결론은 정치적 셈법에 따른 결과. 국민참여당계는 친노로서 당시 민주당 주류와는 조금 노선이 달랐고,
또 얘내는 자기들이 빠친채로 진보통합이 되면 진보가 민주당을 공격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노무현 시절 노무현을 가장 많이 공격한게 민주노총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통합과정에서 진통이 조금 발생한다.

 


우선 진보신당에서 통합진보당으로의 합류를 반대하던, 심상정 노회찬 조승수 등 온건PD보다 좀 더 급진적이던
세력들은 잔류해서 노동당으로 당명을 바꾸게 된다.

 

 

노동당 민주적 사회주의를 강령으로 한다.

 


또 당시 민주노동당의 다수파였던 NL은 국민참여당계와의 원만한 관계

(얘내는 자유주의 지향이었으므로 사회주의 싫어함), 
특유의 사회관(한국은 식민지이므로 사회주의 이전에 민족해방 혁명이 필요하다)으로 인해 사회주의 강령을 삭제했다.
이에 대한 당내 일부 세력의 비판이 있었지. NL에서도 상대적으로 계급성을 중시한 세력들은 강령 개정에 반대했다.

 

 




9. 아, 다시 분당

 

 


이렇듯 잘 나갈뻔 했던 통합진보당은, 추락의 일을 겪게된다.
통합진보당 비례경선에서 NL노선중 최대계파인 '경기동부'가 부정을 저질렀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그래서 자체 조사를 해보니까, 경선에서 발생한 문제로 '이석기 김재연 제명해라!' 의 결과가 나온 것이다.

 


그런데 NL이 보통 NL인가? NL 경기동부 애들은 이석기 김재연 부결안에 통과될 것으로 예상되자,

당 대의원 대회에 난입해서 머리끄덩이를 잡아채는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근데 사실 부정경선은 경기동부 뿐만 아니라 PD와 유시민쪽도 저질렀었다. 오히려 유시민쪽이 제일 크게 저지름)


뭐 이런 일이 계속 일어나다보니까

결국

 

 

 


국민참여당계 + PD계(진보신당을 탈당하고 합류한 온건 사민주의자들, 노회찬 심상정 조승수 등)이,

"종북NL하고 더는 못해먹겠다 이제 갈라서자"하고 만든게

정의당이다!!(원래 이름은 진보정의당)

사실 통합진보당 분당은 표면적으로는 부정경선으로 발생했지만,

사실 당 내에서 여러 정파간의 헤게모니 다툼으로 보는게 더 적절하다고 할 수 있겠다.
80년대에 형성된 낡은 이념 갈등이 21세기에도 반복된 것이다.

 

 

 




10. 진보당 강제 해산부터 오늘날까지

 


그러다가 2014년, 박근혜 정부에서 통합진보당이 해산된다.
강령상의 '진보적 민주주의'가 사실상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한다고 헌법재판소가 판단한 것이다.

 

 

 

철야정진에 임하는 이정희 통합진보당 전 대표
내란선동 혐의로 구속된 이석기

 


하지만 NL의 생명력은 강했다. 이후 다시 '민중연합당'을 창당하고, 현재의 '민중당(원내 1석)'으로 이어져오고 있다.

 

 



PD같은 경우는 정의당, 노동당에서 활동중이며,
사실 PD는 소련 붕괴 이후 워낙 다양한 정파로 갈라져서, 정의당 노동당 외에도 무수히 많은 세력이 있다.


 

한상균 민주노총 전 위원장

 


민주노총 전 위원장이었던 한상균같은 경우는 정의당,노동당보다 더 좌파적인 PD지향.
이른바 민주노총 현장파로 이들은 스탈린주의나 트로츠키주의 등 혁명적 좌파로 스스로를 규정한다.



2000년대 이후 학생운동권 입지가 많이 약해져서 후반부에는 정당 위주로 설명했는데,
사실 몇년전까지만 해도 운동권 총학생회가 잡고 있는 대학이 많다.
경희대같은 경우는 2017년까지 NL(통진당 지지)이 잡았었고, 부산대도 최근까지 NL총학이었다.

 

 

여전히 가두시위에서 활약중인 NL운동권
현재 거의 유일하게 유의미한 숫자를 확보하고 있는 PD계열 학생운동권 정파인 '전국학생행진'

 


레닌주의, 트로츠키주의 성향의 사회변혁노동자당. 이름과 달리 공식정당은 아니고 사회단체 성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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