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게 채색된 중국식 단청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와 권력을 가진 자들의 구체적인 권위와 위엄 표현은 건축이였다.

그리고 그들은 최고 수준의 기술과 규모, 그리고 아름다움으로 표현되기를 요구했으며,

그 중 가장 오랫동안 남아서 우리들을 감동시키는 부분은 역시 아름다움의 표현이라 하겠다.

즉 건축은 알맹이인 기능이 다 사라지더라도 예술로서의 생명력은 유지할 수가 있는 것이다.

 

 

 

JTBC 썰전 中
JTBC 썰전 中
디스토피아

 

유시민처럼 건축이 예술임을 부정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 디스토피아 컨셉의 SF 작품에 등장하는 삭막한 건축,

설비투성이의 기계같은 건축만 사방에 널려있다고 생각해보자.

그게 어디 사람사는 곳인가? 지친 일상의 피로를 달래고자 아름다운 자연으로 떠나는

사람들이 많은데 건축이 곳곳에서 조화를 이룬다면 현대인은 항상 즐거운 여행을 하듯이

삶을 살아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건축은 예술이여야 한다.

 

 

 

원시시대의 움집

 

 

물론 처음부터 건축이 예술이였던 것은 아니다. 원시인들이 거주하던 집이란 것은 이런 움막이나 동굴이 고작이였다.

인류가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문명이 태동했음은 보편적인 상식으로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마을, 도시, 국가가 형성되었고 그 과정에서 문화가 발달한 것.

원초적인 자연의 공포로부터 벗어나 날림으로 지은 움막이 아니라

튼튼하고 멋스러운 주택을 짓기 시작하면서 건축은 예술의 영역으로 발을 내딛었다.

 

비단 건축만이 아니라 삶에 여유가 생기면서 멋을 부리기 위해서 그림을 그리거나

물건에 장식을 하거나 종래 악쓸 때나 쓰던 목소리를 가지고 노래를 부르는 등.

 

 

 

동북아시아 문화권

 

 

세계 4대 문명 중 하나로 알고 있는(이 명칭이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만) 황하문명.

어쨋건 동아시아의 문명이 중원에서 태동한 것은 대부분의 학자들이 인정하고 있다.

이것은 중국을 좋아하고 싫어하고를 떠나서 서구문명의 뿌리가 그리스 로마문명인 것과 같다.

 

 

 

새롭게 해석된 측천무후

 

 

우리가 사는 동양에서 로마제국과 같은 국가를 제시하라면 역시 당나라가 아닐까?

당은 한(漢)이 만들어놓은 문화의 토대 위에 주변국들의 문화를 흡수하여 중화문명을 완성했고

이를 동아시아 전체에 퍼뜨려서 고대 동아시아 세계를 완성한 중원 왕조로 높게 평가받고 있다.

예를 들어서 당삼채와 같은 도자기라던지, 이백과 두보같은 시인들, 당비파같은 고유의 악기들.

"장안에서 제일가는~" 이라고 할 때의 장안(長安)도 본래 당나라의 수도를 일컫는 말이다.

이 무렵 일본에서도 견당사라는 당나라 유학단을 파견했고 당의 문화는 모래밭에 물붓듯이

열도에 흡수되어 현대의 일본인들도 반중감정과는 별개로 당나라에 대해서는 호평하고 있다.

 

 

 

당나라 대명궁 복원도
당나라 대명궁 복원도

 

 

그리고 건축만큼 그 지역의 문화와 문명을 종합적으로 대변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종교건축을 중심으로 발전해온 서구국가들과 달리 동북아시아는 궁전 건축을 중심으로 발전했다.

천자(天子)라는 칭호가 보여주듯이 하늘의 아들인 황제가 기거하는 궁전을 그 권위에

걸맞게 건축하는 것은 중차대한 일로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지식과 지혜를 동원하여

건축 기술을 개발해야 했고 그 결과 일찌감치 나름대로의 건축 양식이 완성되었다.

 

 

 

 

 

당나라 건축의 특징은 부드러운 곡선으로 주요 건축물과 부속 건물을 연결한다는 점.

당나라와 송나라 시대에 중국 건축과 예술이 최고 레벨에 도달했다는 평이 많다.

오히려 이후로는 퇴보했다는 말들이 많고 現 중국에는 온전하게 보존된 당나라 풍이

없다시피 해서 졸지에 일본이 당나라 문화의 계승자로 평가받고 있는 판국이다.

 

 

 

 

 

 

 

 

 

교토부터가 당나라의 장안을 본따서 설계한 계획 도시고, 건축양식을 보더라도 그렇다.

일본의 신사나 사찰을 가면 볼 수 있는 아치형의 처마를 당파풍(唐破風)이라고 한다.

아까 이야기했듯이 열도의 고대 문화 형성에 당나라가 지대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일본인들도 당나라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있다. 유럽인들이 로마제국을 평가하는 것처럼.

물론 문화의 원류가 어디든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또 어떻게 가꾸어나가는지가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은 그 나름대로 대륙의 문화를 받아들여 그것을 자신의

스타일로 발전시켰고 일본 특유의 문화수출 덕에 이제는 일본 문화로 인정받고 있는 것.

 

 

 

 

 

예시들. 가령 작은 분에 키가 낮은 나무를 심고 가꾸는 분재(盆栽)만 하더라도 본래 당나라의 문화이지만

미니멀라이즈를 추구하는 일본인들의 문화적 특성과 잘 맞아떨어져서 현재는 일본의 분재가 가장 유명하다.

분재의 영단어인 "Bonsai" 또한 일본어 "본사이"에서 유래한 것으로 일본의 문화가 널리 퍼지면서

분재 또한 세계인이 향유하는 취미로 자리를 잡아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는 과실수 분재가 있는가 하면

야자수 분재, 바오밥 분재 등등. 분재 애호가들은 분재를 자식처럼 아낀다. 그리고 일본을 대표하는 악기로

샤미센이 유명한데 이것도 그 기원을 굳이 따지자면 대륙의 상시엔이 원류로 오키나와를 거쳐서 열도에

전파되었고 이것이 현대에는 일본을 대표하는 악기로 자리잡아 곳곳에서 사랑받고 있는 것이다.

 

 

 

 

 

또 오늘날에는 벚꽃이 일본을 상징하는 꽃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고대에는 당나라의 영향을 받아서

매화가 더 사랑받던 시절이 있었다. 헤이안 시대로 접어들어 당의 문화 위에서 나름대로 독자적인

아이덴티티를 구축하면서 매화 대신 벚꽃이 일본의 꽃이 된 것이고 그 역사는 천 년이 넘는다.

벚꽃을 노래한 하이쿠라던지, 벚꽃이 그려진 우키요에 등 벚꽃을 소재로 만들어진 예술작품들이

널렸고 서브컬쳐에서도 일본의 상징 중 하나로 지겹도록 나오는 게 이 벚꽃이다.

그나저나 일본이 이렇게 당나라, 송나라의 문화를 흡수하여 자기 나름대로의 독자적인 문화를 

발전시킬 동안 중국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안사의 난, 황소의 난으로 당나라는 멸망하고 이후에도 몽골의 침입으로 이민족이

중원을 차지하더니 당나라의 문화는 명나라 때부터는 그 대가 끊겼다는 평을 받고 있다.

사실 중국의 역사는 특기할 만한 점이 있어서 주인이라는 게 따로 없고 누구든 처들어와서

차지하기만 하면 임자가 되는, 그러니까 실체가 없는 국가였다. 북방에서 이민족들이

밀고 내려와서 중원을 차지하면 자기 자신이 중국이 되어서 중국 역사로 편입되었고

오늘날 중국이 저렇게 큰 땅을 가진 것도 이민족들이 중국의 영토를 계속 키웠기 때문이다.

 

 

 

 

 

그나마 현대에라도 자국의 문화를 잘 추스르고 보존하고 조사하고 복원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더라면 좀 나았을텐데 문화대혁명으로 자국 문화를 스스로 박살내는 자해, 자폭을 저질렀다.

당시에 파괴된 유물이 한둘이 아니라서 사병을 동원해서 유적지를 지킨 저우언라이,

미리 60만 8천 점의 유물을 챙겨서 대만으로 도주한 장제스가 아니였다면 그나마 남아있는 게 없다시피 했을 것이다. 

왜? 홍위병들에게 전통 문화란 것은 전부 봉건잔재로 파괴의 대상이니까.  

 

 

 

 

 

오죽하면 중국 언론들도 당나라의 양식은 일본이 계승하고 있고 명나라의 양식은 한국이 계승하고 있으며

송나라는 베트남이 계승하고 있는데 현대 중국에는 무엇이 남아있냐고 한탄하는 기사를 쓸 지경.

이에 대해서 각국의 네티즌들은 "현대 중국에는 미세먼지가 있다." 라는 식으로 비아냥거리고 있다.

아예 고대 중국의 양식을 복원하면 그게 일본풍으로 비치기 때문에 복원도 못한다는 말이 나돈다.

따지고 보면 자업자득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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