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방문한 김종필과 오히라



김종필은 일제시대 태생인데다가 당시로서는 엘리트코스를 밟은 인물이였기에 일본어에 능했다.
물론 구 정치인들이 일본어에 능한 것이 딱히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지금도 한국은 제2외국어로 일본어를 가장 많이 배우는 국가다.

그런데 김종필은 보통의 일본어가 아니라 화족들이 쓰는 고급 일본어를 구사했다.

일본에서도 상류층들이 사용하는 일본어를 사용했다는 말이다.


 


육성으로 확인해보자. 
JLPT N1급을 '따위'로 만들어버릴 만한 회화를 구사한다.

 

 



그리고 이것이 김종필과 오히라가 작성한 메모.
일본어와 영어로 쓰여있는데, 김종필은 오히라와의 담판을 통해서
무상차관 3억 달러, 유상차관 2억 달러, 상업차관 3억 달러,
토탈 8억 달러의 금액을 일본으로부터 받아내기로 합의하였다.

 

 

당시의 언론 보도



당시나 지금이나 이를 두고 굴욕협정이였다, 푼돈 몇 푼으로 민족적 자존심을 팔았다 등의 비판이 많다.

그러나 이같은 비판이 정당한가 묻는다면 이 또한 무지의 소산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우선 지적해야 될 점은 애시당초 한국은 일본에 청구할 게 없었다는 것이다.
국제법, 국제관계에서도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은 법적 근거가 없다.
지금도 구미열강들은 구 식민지에 대한 배상 문제로 시끄러운데,
지금까지 배상이 이루어졌다는 것도 '학살 문제에 대한 조치'일 뿐이지
식민지배 그 자체에 대해서 국가가 사과하거나 배상하는 일은 전례가 없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이 회담에 한국은 끼지도 못했다. 왜냐하면 한국은 일본에 대한 전승국도 아니고 피해국도 아니였기 때문이지.
다만 일본의 일부였다가 분리되었으므로 양 국가와 국민 간에 재산 및 청구권을 상호 정리하라는 내용이 들어가있을 뿐.
말하자면 이게 한일청구권협정의 기반이라는 말이다. 무슨 식민지배 피해에 대한 보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양국가와 국민 간의 재산 및 청구권을 정리한다는 개념이다. 왜냐하면 일본에게도 청구권이 있었으니까.

 

 

조선인 노무자 임금 미지불 공탁금 내역서



사진은 일본 국공립도서관에 비치되어있는 조선인 노무자 임금 미지불 공탁금 내역서이다.
이승만 정부는 태평양 전쟁 말기의 징용, 징병 체납금, 공출, 한국에서 반출해간 고서적, 미술품, 골동품, 금은 등을
따져서 일본 정부에 거액을 요구했는데 이는 피해배상이 아니라 본래 한국의 재산을 반환하라는 취지였다.
그러자 일본은 역청구권을 제기하며 맞서고 나왔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조선반도에 남겨놓은 일본 자산이다.

 

 



이같은 청구가 가능한 이유는 헤이그육전법규 46조 때문이다.
해당 조약은 사유재산 불가침의 원칙을 명시하고 있는데
미군정이 일본 국민들의 재산을 압류하여 한국 정부에 이관한 것은
국제법 위반이며 이에 따라서 한국 정부가 책임지고 배상하라는 것.
일본이 한반도에 남겨놓은 재산은 당시 한반도 총 자산의 85%에 달했다.

 

 



한국과 일본의 청구권을 계산해서 일본의 청구권이 더 크다면 오히려 한국이 일본에게 배상을 해야 될 판이였다.
이에 미국은 재한 일본인 재산의 취득으로 한국의 대일청구권은 충족되었기에
부차적인 문제들은 당사자 간의 조정에 맡기도록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고집불통이던 이승만 정부가 실각하고 박정희 정부가 들어서자 협상이 
탄력을 받게 되었는데 한국 측 대표로 참가한 김종필과 오히라의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우선 한국 측에서 제기한 금은이나 미술품, 골동품 등의 반출에 대해서 그것은 약탈이 아니라,
일반적인 상업거래로 조선은행이 적정가격으로 적법하게 대가를 지불하고 사들인 것으로 결론났다.

한국에서 일본으로 송금, 이체된 금액에 대해서는 당시에는 한국과 일본이 하나였기 때문에 은행 간의
금융거래에 대해서 한국 정부가 청구할 권리가 없었다. 다만 피징용 노무자나 징병자 등 태평양전쟁 말기에
임금을 지급받지 못한 경우가 있으므로 그것에 대해서는 배상받을 수 있지만 그 금액은 7000만 달러에 불과했다.
하나하나 따지고 보니까 한국에서 적법하게 청구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던 것이다.

 

 

김종필과 오히라 메모



그렇기 때문에 김종필은 청구할 게 별로 없는 악조건에서 경제원조라는 명목으로라도 돈을 받아냈던 것이다.
명목상 일본은 독립축하금, 경제협력자금을 주고 한국은 청구권으로 받는 합의가 타결되었다.

그리고 이게 현실적으로 최선의 합의였다. 점령기간이 3년에 불과한 필리핀은 5억 5000만 달러나 받았다고
딴지거는 사람들이 많은데 돈의 성격이 다르다. 필리핀은 국제법적 근거가 있는 전쟁 배상금을 받았기 때문에
점령기간이 짧아도 큰 돈을 받을 수 있지만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을 명시한 법규는 만국공법에도 없다.

게다가 한반도에 남겨진 일본 자산도 고려해야 했다. 그 가치는 GHQ의 계산에 의거해 60억 달러에 달했다.

 

 



이로서 한일 간의 청구권 및 재산 정리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는 한일 수교 수십년 간 한국 정부가 준수해온 원칙이였으며 참여정부도 이같은 원칙을
재확인한 바 있다. 따라서 피해자 개인에 대한 배상이 필요하다면 한국 정부가 책임지겠다는 것.

그런데 요즘 대법원이 이같은 원칙을 뒤집어엎으면서 양국 관계를 작살내놓았는데
한국 정부는 '삼권분립'을 운운하고 대법원은 '사법적극주의'를 운운하지만 국제적으로
사법부가 외교 문제에 대해서는 독단적으로 행동할 수 없다는 '사법 자제의 원칙'이 통용되고 있다.
왜냐하면 대외적으로 국가를 대표하는 것은 정부이며 법원이 외교를 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본으로부터 지급받은 자금 또한 당시로서는 거액이었다.
이를 현재 가치로 환산하기는 쉽지 않으나 당시 한국의 국가예산이 850억 원이였다.
일본이 지급한 달러는 산업자금으로 투입되었고 고도성장의 기반을 다진 바 있다. 

최근 한국 대법원은 개인의 배상청구권은 살아있으며 보상은 이루어졌지만
불법행위로 인한 피해자 개인에 대한 배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판결을 했는데
엄밀하게 말해서 외교권한 침해이자 국제법 위반이다. 국제적으로 통용되지 않는 논리다.

한일협정을 폐기하여 일본 측으로부터 받은 돈을 현 가치로 환산하여 돌려주고 나서
일본과 다시 청구권 문제, 즉 재한 일본인 재산에 대한 문제를 가지고 싸울 각오가 없다면
한국은 한일기본조약으로 과거사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되었음을 인정해야 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글로벌 스탠다드다.

 

 

즉 법적으로 애시당초 청구할게 없었다. 그리고 받아냈다. 그리고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일구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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